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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 Theme.2 체제적 경쟁 시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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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객관적 현실 반영한 설계도 필요


미중 관계 이분법 지양 

한국 우선주의에 따라 명분과 실리 균형 이뤄야 


글 | 이수형(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무질서의 국제질서에서 도전과 응전의 양상으로 전개되는 체제적 경쟁은 지역적·국제적 안보 지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체제적 경쟁은 과거 미국과 소련 간에 형성되어 국제정치를 진영 대결로 몰아간 냉전체제와는 성격과 행태가 판이하지만, 느슨한 진영화 구도를 형성해 나가면서 역내 진영화는 물론 지정학적 연결과 안보적 불가분성에 토대를 둔 지역 간 진영화라는 이중적 진영화를 추동하고 있다. 이중적 진영화를 추동하는 체제적 경쟁은 중·동유럽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에 정치·경제·외교·안보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딜레마를 부과하면서 한국의 대외 행보에 가장 힘든 도전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세기 후반 독일 통일과 소련 제국의 붕괴로 상징되었던 냉전체제의 와해는 지정학적 지진이었다. 냉전 종식 이후 세계는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로 재편되는 가운데 경제적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국제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2022년 2월에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혼돈과 혼란의 국제질서의 서막을 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혼돈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흔들리는 국제질서는 ‘무질서의 국제질서’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무질서의 국제질서에서 무질서가 의미하는 것은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질서유지 메커니즘이 뚜렷하게 특정하기 어렵거나 모호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국제사회에서 국제질서는 미국과 중국의 타협과 조정, 갈등과 협력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미국과 중국을 비롯하여 유럽연합과 러시아 등 G7과 G20 국가들에 의해서만 국제질서가 작동하지도 않는다. 오늘날 국제질서가 혼탁하더라도 분명 질서가 존재하며 이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지만, 질서유지 메커니즘의 형태와 속성, 그리고 주요 양상이 특정의 무엇으로 규정하기 힘든 상황이다. 


서서히 다가오는 무질서의 국제질서는 기존의 단극체제나 양극체제, 혹은 세력균형 체제 등 우리에게 익숙한 특정의 질서유지 메커니즘으로 규정하기 힘들다. 국가 단위 중심의 국제정치에서 강대국 정치가 아닌 강대국과 지역의 중추 국가들의 조합으로 구성된 국제체제가 나타날 것이다. 국제체제의 형태는 불규칙적이고 상당한 가변성을 보일 것이다. 따라서 향후의 국제질서에서 주요 국가들의 대외 행보의 기본원리는 자국 우선주의에 근거한 전략적 취사선택이 될 것이다. 이로 인해 국제협력은 부분적이면서도 파편화된 양상을 보여 협력의 구심력은 크게 떨어질 것이며, 국제정세는 느슨한 지정학적 진영 구도의 형성을 촉진할 것이다.


글로벌 질서 재편 둘러싼 체제적 경쟁 시대 시작


이러한 무질서의 국제질서에서 목격되는 커다란 흐름은 미국과 유럽 중심의 서방 세계와 비서구적 전통과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대표하는 중국 간에 글로벌 질서 재편을 둘러싼 체제적 경쟁(systemic competition)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조짐이다. 이러한 체제적 경쟁은 장기전 양상을 보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맞물리면서 각자의 느슨한 진영 연대를 형성하는 가운데 지정학적 긴장을 부추기고 있다. 


무질서의 국제질서에서 작동하는 체제적 경쟁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국가의 비전으로 공식 채택한 시진핑 정부의 출범에서 연유하였다. 미국과 유럽의 서방 세계는 시진핑의 중국 정부가 기존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대체하고자 하는 의도를 암묵적으로 드러내면서 다양한 영역과 분야에 걸쳐 영향력 확장을 도모해 왔다고 인식한다. 즉, 서방 세계는 시진핑 집권 이후 다양한 영역에 걸쳐 전개된 중국의 대외 행보(유럽국가의 항만과 전력망 그리고 텔레콤에 대한 자본 투자와 영향력 확대, 남중국해와 지구적 공공재에 대한 위협, 러시아와의 전략적 제휴 강화, 홍콩의 우산 혁명과 신장 지역 등에서의 인권 유린과 전랑 외교로 표현되는 공세적 외교 행태 등)를 중국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서방 세계는 중국의 이러한 대외 행보에 따른 영향력 확장을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체제적 도전으로 간주하고 있다. 


2022년 6월 마드리드 나토(NATO)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글로벌 질서 재편을 둘러싼 중국과의 체제적 경쟁을 공식화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10월 12일에 공표한 국가안보전략서에서 중국을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가 있고 또한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그리고 기술적 힘이 있는 유일한 경쟁국”으로 규정했다. 자신을 체제적 도전자로 규정한 미국과 유럽의 입장에 대해 중국도 강경하게 나오고 있다. 10월 16일 제20차 당대회를 통해 장기 집권의 토대를 쌓은 시진핑 주석은 중국을 협박·억제·봉쇄하고 최대한 압박하려는 외부의 시도에 맞서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바야흐로 미국과 유럽 중심의 서방 세계와 중국과의 체제적 경쟁 시대의 막이 올랐다. 미국과 유럽은 유럽-대서양 지역과 인도-태평양 지역의 지정학적 연결성과 안보적 불가분성을 강조하면서 동맹국과 우군 결집을 통해 글로벌 질서 재편을 둘러싼 체제적 경쟁에 임하고 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에 기반한 러시아와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고 상하이협력기구(SCO)를 매개로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지역의 지정학적 연결성을 강조한다. 최근에는 중동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관계 협정을 맺고 중동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여 미국 주도의 서방 세계와의 체제적 경쟁에 대비하고 있다.


생존과 성장 관리하고 미래로 나가기 위하여


무질서의 국제질서에서 도전과 응전의 양상으로 전개되는 체제적 경쟁은 지역적·국제적 안보 지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체제적 경쟁은 과거 미국과 소련 간에 형성되어 국제정치를 진영 대결로 몰아간 냉전체제와는 성격과 행태가 판이하지만, 느슨한 진영화 구도를 형성해 나가면서 역내 진영화는 물론 지정학적 연결과 안보적 불가분성에 토대를 둔 지역 간 진영화라는 이중적 진영화를 추동하고 있다. 이중적 진영화를 추동하는 체제적 경쟁은 중·동유럽과 중앙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에 정치·경제·외교·안보 등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딜레마를 부과하면서 한국의 대외 행보에 가장 힘든 도전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질서 재편을 둘러싼 체제적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무질서의 국제질서에서 대한민국의 생존과 성장을 관리하고 미래로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자신에 대한 객관적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반영한 전략적 설계도를 마련해야만 한다. 참고로, 한국의 객관적 현실은 남북한 분단국가, 미국과의 동맹국,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지정학적 반도 국가, 그리고 오늘의 한국을 가능케 한 세계적 통상국가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4가지 객관적 현실을 순기능 방향으로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전략적 설계도를 마련하여 거세게 몰아쳐 올 체제적 경쟁의 높은 파고를 극복해내야 한다. 


한국의 객관적 현실을 반영한 전략적 설계도의 근간은 한국 우선주의가 되어야 한다. 우리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동맹국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이웃 국가인 중국과는 척지지 않는 외교관계를 그려나가야 한다. 비록 미국과 중국이 체제적 경쟁의 상대자이지만 우리에게는 동맹국이자 이웃 국가로 이들과의 관계를 이분법적 시각으로 바라볼 이유가 전혀 없다. 물론, 중국과의 협력관계의 증진이 한미관계와 한중관계의 전략적 등치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한미, 한중 양자관계는 전략적 차등화가 분명 있다는 점을 견지하면서 양자관계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체제적 경쟁이라는 현실에 부합하는 사고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와 가치와 규범을 달리하는 상대가 있는 외교관계에서는 보편적 가치와 규범 그 자체를 국익으로 삼지 말고 다양한 영역과 분야에서의 포괄적인 가치와 실용적 국익 간의 적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전략적 방책을 준비해야 한다. 즉, 우리의 국가 정체성에 부합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강조하더라도 국민의 안전과 행복, 그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 국익 창출이 뒤따르지 않는 대외 행보는 지양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실용주의에 바탕을 두더라도 명분을 상실한 국익 추구의 대외정책 추진도 자제해야 한다. 명분과 실리 간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어느 한쪽을 완전히 배제한 대외정책 추진은 삼가야 한다. 글로벌 질서 재편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미국과 중국의 체제적 경쟁이 격해질수록 한국의 안보적 자율성은 위축되고 동맹국 미국에 매달리고자 하는 안보적 의존심리가 생기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이를 통해 체제적 경쟁의 높은 파고를 극복할 수 없고 또한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로운 전략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보편적 대외원칙을 견지하는 가운데 한국 우선주의에 따라 상황과 여건에 따른 전략적 취사선택을 활용하여 미국과 중국의 체제적 경쟁을 활용할 수 있는 세밀한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필자 이수형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학 박사.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민주평통 기관지 편집위원,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갈등과 공존의 인도-태평양』(공저), 『신국제질서와 한국외교전략』(공저), 『중추적 중견국가로서 한국의 외교안보전략 3.0』, 『맷돌의 굴대전략: 한반도 평화통일 전략구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이론·역사·쟁점』, 『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안보』 등이 있다. 

[이 게시물은 순국선열유족회님에 의해 2023-01-03 15:30:45 편집위원 컬럼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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