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 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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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 11월과 관련된 순국선열의 작은 역사, 소중한 이야기 1943년 11월 말의 카이로 회담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후 한국의 진로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열강 수뇌들의 모임이었다. 미·영·중 3국 정상이 참가한 결과, 1943년 12월 1일 공식발표된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문제는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다. “일본은 또한 폭력과 탐욕으로 탈취한 모든 지역에서 축출될 . . .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가
[2022/10] 일제의 치욕에 당당히 맞선 조선의 기생 일제강점기 창기로 취급받던 기생들은 3·1운동을 계기로 일제의 치욕에 당당히 맞섰다. 진주·수원·해주·통영 등 전국 곳곳에서 기생들이 만세 시위에 나섰다. 손가락을 깨물어 흐르는 피로 그린 태극기를 들었고, 금비녀·금반지 등을 팔아 만든 소복 차림으로 독립 만세를 외쳤다. 기생들은 독립사상을 품은 남성들 . . .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가
[2022/10] 함남 정평의 만세시위 ❷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을 때 일어난 일들 1919년 3월 7일 정평 부내면에서 독립만세 시위의 첫 봉화가 오른 후 3월 11, 13일 인근 주이면 시위로 번졌다. 이 시위가 3월 13일 그 아래 춘류면 4,000명 시위로 이어졌다. 다음 날인 3월 14일 주재소를 습격한 만세시위로 5명이 사망한 선덕면 만세시위, 3월 15일 장원면 초원시장 시 . . .
한번 더 생각하는 역사
[2022/10] ‘임정의 아들’ 김자동 선생을 떠나보내며 ‘임정의 아들’로 불리던 임정의 산증인인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 김자동 선생은 할아버지와 부모의 항일운동 정신, 특히 어머니의 불요불굴의 독립의지를 늘 기억하며 살았다. 행여 자신이 ‘타락’하지 않을까 경계하는 마음으로 정·관계는 멀리하면서 언론계에 몸을 담고 ‘통일정부’의 수립을 지향하는 논설들 . . .
순국시론
[2022/10] 고당 조만식의 애국·애족의 길 1913년 3월, 메이지대학 전문부를 졸업하고 귀국한 고당은 오산학교 교사로 부임해서 지리·역사·영어를 가르치면서 교육구국(敎育救國)의 길에 들어섰다. 이때 고당은 학생들에게 검소한 생활을 강조하고, 앞장서서 스스로 실천하였다. 이것이 뒷날 조선물산장려회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고당은 국산품 애용이 곧 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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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 10월과 관련된 순국선열의 작은 역사, 소중한 이야기 올해 10월은 만주 독립군 부대의 청산리독립전쟁 102주년이 되는 달이다. 김좌진의 대한(북로)군정서 독립군 부대와 함께 대한독립군 등 독립군 연합부대를 지휘하여 추격하는 일본군에 대승을 거두었던 홍범도는 늘 조국 독립과 민족 해방을 위한 독립전쟁의 결의를 다지며 부하들에게 강한 정신교육을 실시하며 독립 . . .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가
[2022/09] 독립운동에 앞장선 장애인 독립투사 신체적 장애는 독립운동의 한계가 되지 못했다. 시각 장애인이었던 심영식은 치마 속에 태극기를 숨기고, 앞이 보이는 사람의 손을 잡고 다니면서 독립선언서를 전파했다. 서대문형무소 간수가 “맹인 주제에 무슨 독립운동이냐”고 비아냥대자, “내 눈이 멀었다고 마음까지 먼 줄 아는가. 우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 . .
3월의 전설
[2022/09] 함남 정평의 만세시위 1 l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을 때 일어나는 일들 3월 2일 밤 함경남도 정평군 부내면 정평 읍내에 독립선언서가 배포됐다. 그날은 독립선언 둘째 날이었다. 읍내에 뿌려진 독립선언서를 발견한 정평 헌병분견소 헌병들이 급히 16매를 수거, 압수하고 경계에 들어갔다. 일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선언서가 전달되자 마을 사람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조선독립 . . .
한번 더 생각하는 역사
[2022/09] 대한제국은 왜 멸망했나? 9┃대롱 시각[管見]으로 바깥세상을 보는 어리석음 대한제국의 해방(海防)의 실패가 망국의 원인의 맨 앞자리에 있으며, 그러한 결과가 초래되기까지에는 중화 중심의 세계관과 일본을 이적(夷狄)으로 본 편협한 인식,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들어온 서양 문물까지 거부함으로써 취약 국가(脆弱國家)로 몰락하는 과정이 곧 망국의 과정이었다. 결국 문제는 시각과 시야, . . .
순국시론
[2022/09] 황성신문 민중계몽에 앞장서다 황성신문은 창간 당시부터 재정적인 토대가 잡히지 않아서 어려움이 참으로 많았는데, 1902년 8월 제2대 사장으로 장지연을 선출하였다. 하지만 신문사의 재정은 여전하였고, 설상가상 나라는 나날이 기울고 있었다. 1905년 11월 17일, 일본의 강압에 의하여 을사오조약이 체결되면서 나라의 명운은 곤두박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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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 9월과 관련된 순국선열의 작은 역사, 소중한 이야기 1910년대 중국 동북지역(만주)과 러시아 연해주 일대를 두루 시찰하였던 박은식(朴殷植)은 홍범도 등과 같은 옛날 의병 용사들이 국권회복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상황을 목격하고 그러한 모습을 감동적으로 서술하였다. “나는 요즘 중국과 러시아령 사이를 유랑하면서 두루 각처의 동포들을 방문하여 보았다. 그들은 . . .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가
[2022/08] 일제에 항거한 항일 영화인 1926년 10월 1일, 나운규가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감독한 영화 ‘아리랑’이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되었다. 흑백 화면의 무성영화였지만 이 영화는 이 땅의 민중들에게 일대 충격을 안겨준 혁명적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면 감동한 관객들은 목 놓아 울며 아리랑을 따라 불렀다. 일본 순경이 호각을 불어 상영을 . . .
한번 더 생각하는 역사
[2022/08] 순국과 건국을 동시에 생각하게 되는 여말선초의 지도자들 우리 정치학계에서 리더십 연구는 여말선초의 지도자들에 관한 연구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 시기는 5백 년 가까이 이어진 고려가 멸망하고 앞으로 5백 년 남짓하게 존속할 조선이 건국되는, 글자 그대로 역사의 전환기였다. 한쪽에서는 고려사회와 조선사회를 똑같은 중세사회로 보면서 조선의 건국은 쿠데타일 뿐 혁명 . . .
순국시론
[2022/08]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의 항일독립운동 1919년 3·1 독립운동의 불길이 전국을 휩쓸 때, 남자현은 독립선언서를 가슴에 품고 ‘대한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그리고 3월 9일 이른 아침, 압록강을 건너 류하현 삼원보로 향했다. 남자현은 청산리전투에 참전해 독립군의 간호에 전력을 기울여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어졌다. 그 후 이상룡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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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 나치 학살보다 처참한 731부대와 마루타 광복 77년은 민족시인 윤동주의 사망 77주이기도 하다.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새벽 3시 36분,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마지막 절명시 한편 남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였다. 일본 도지샤 대학 재학중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경찰에 끌려간 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시체가 되어 형무소 문밖으로 나와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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